2026년 3월 21일 토요일

그와 함께 동행하는 시작 - 일상의 세관에서 예수를 만나다.





   부름은 징벌이 아니다. 중학 시절 "주번 나와" 하는 불호령에 뛰어나가던 '9번' 동급생의 무구한 해프닝처럼, 우리는 신의 부르심을 종종 무거운 노역으로 착각한다. 부름의 뒤편에는 늘 감당해야 할 숙제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사로잡혀 우리는 그 소리를 피하려 애쓴다. 

   그러나 성경이 시대와 시간을 관통하여 증언하는 부르심은 결코 거창한 노동력을 징발하는 차가운 호출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신이 거류하는 은혜의 공간 안에 우리의 남루한 육신을 기꺼이 불러들여 함께 자리하는 일이다. 위압적인 군림이 아니라 시선을 맞추고 나란히 걷는 행위다. 서늘하고도 지극히 다정한 동행, 그것이 부르심의 실체다.

    세관이라는 이름의 일상
    성경 속 인물 '마태(레위)'의 낡고 먼지 쌓인 세관 사무소를 본다. 직업이 세리였던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로마의 압잡이요 죄인으로 멸시받던 자였다. 동족들의 적대적인 수군거림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묵묵히 핏기 없는 동전을 세던 그의 삶은, 얼마나 지독하게 춥고 외로웠을까. 

그 갇혀버린 남루한 일상 깊은 곳으로, 어느 날 한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를 따르라." 

   짧고 단호한 음성이었다. 천지를 짓누르지도 우레와 같지도 않은 그 한마디가, 마태(레위)의 굽은 등과 평생을 짓누르던 오랜 냉기를 단숨에 허물었다. 세상이 밀어낸 자에게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그 무조건적인 부름 앞에서, 인간의 기쁨은 지식이나 언어로 설명할 길이 없다.

     노동보다 짙은 은혜
    우리는 생에 무수히 반복되는 부르심 앞에서 입버릇처럼 항변한다.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신의 부르심은 결코 통과해야 할 자격의 증명이 아니다. 그것은 흠결투성이의 삶을 먼저 비집고 찾아와, 기어이 끝까지 당신의 곁을 내어주고야 마는 무한한 은혜다. 변명의 그늘 뒤로 더 이상 조바심치며 숨을 필요가 없다. 절대자가 가장 간절히 갈구하는 것은 우리가 눈물로 쏟아내는 성과의 땀방울이 아니라, 그저 '우리'라는 가냘픈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마태(레위)
누구에게나 짓눌린 일상이란 이름의 세관이 있다. 이제 그 어둠에서 일어나 생명의 참된 잔치로 나아갈 때다. 집이든 일터든, 그 척박한 땅에서 주와 함께 머문다면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시대의 마태(레위)다. 고요한 동행은 이미 낡은 세관 한가운데서 시작되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그와 함께 동행하는 시작 - 일상의 세관에서 예수를 만나다.

   부름은 징벌이 아니다. 중학 시절 "주번 나와" 하는 불호령에 뛰어나가던 '9번' 동급생의 무구한 해프닝처럼, 우리는 신의 부르심을 종종 무거운 노역으로 착각한다. 부름의 뒤편에는 늘 감당해야 할 숙제가 숨어 있을...